1961년 학교설립과 동시에 특별활동의 한 부서로 조직된 합창부가 노래하는 인성으로 성장해 온지 어언 20여년이 되었다.
초창기 지도는 여훈 교사가, 1961년부터 1963년 김신욱 교사가 맡으면서 텔레비젼에 출연하는 등 본격적인 대외활동과 더불어 기반을 닦게 되었다. 그 동안의 합창부 활동을 대강 더듬어보면 1968년 서울 수도사대 주최 전국여자 음악콩쿠르대회에서 영예의1등을, 1969년에는 동 대회에서 2등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난파 음악제에는 매년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데 7회(1975년 9월19일)에는 1등을 하여 당시 심사위원이던 나운영 선생님과 이홍렬 선생님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특히 이 날 받은 상금을 불우이웃돕기를 하여 더욱 뜻 있는 경사(慶事) 가 되었으며, 다음해 8회(1976년9월24일)에는 3등을 하여 탄 상금으로 그 해 (12월23일) 해병대 6540부대를 위문하였다.
또 1977년 7월4일 제1회 인천 지구 협동장학위원회 주최로 경기도 중․고 등학교 음악, 무용경연 예선대회가 열렸는데 여기서 인성합창부는 ‘몽금포 타령. ’우리 눈뜨게 하소서’를 불러 최우수에 입상하였다. 이러한 실력을 길러주신 음악 선생님은 전주온 선생님(1963년-64년), 김홍경 교사(1964-66년), 윤학원 교사(67년-? 선명회 합창단 지휘), 조동인 교사에 이어 권경호 교사이다.
그리고 중학교 설립 이래 계속 활동해 온 중학교 합창부도 유영화 교사의 지도아래 꾸준히 연습에 임하고 있다.
한편 1970년 10월15일에는 그때까지 합창단에서 활약하던 27명의 선배들로 조직된 <백합 합창단>이 제1회 공연을 제일교회에서 가져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순결과 청순을 상징하는 인성의 교화(校花)인 백합(白合)을 그 명칭으로 한 이 합창단은 당초 해마다 정기적으로 발표회를 가질 계획으로 시작되었으나 3회 공연을 끝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백합합창단이 후배들에 의해 다시 그 맥을 잇게 되기를 기다린다.
1980년 현재 고등학교 합창부원은 1,2학년 79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실력에 관계없이 학생들의 취미와 정서활동을 위해 희망자에 한해 조직 된 것이 특이하다 하겠다. 지도는 본교 합창부 출신인 박영숙 교사가 맡고 있다. 합창부 활동에 어려운 점이 있다면 인문고등학교이기에 연습시간이 대단히 부족하여 대회가 있을 무렵이면 점심시간에 점심을 거르면서 연습을 하기도 하고 또 파트장을 중심으로 파트별 연습도 하였다고 하니 그 열성과 일치가 대단하다고 하겠다.
7월 28일서부터 31일 까지 4일간 김포군 검단면에 있는 오현교회에서 실시되었다. 봉사대원은 이동성 목사님과 세분의 교사, 학생12명(고8명, 중4명)으로 조직되어 ‘가르치는 교회’ 라는 주제로 여름어린이 성경학교 개최를 비롯하여 경로잔치와 무료진료 등 대민 봉사 활동을 전개하고 예배용 풍금도 기증하였다.
봉사 첫날은 전도와 교사 준비 기도회, 환영식을 가졌고 이튿날에는 복음병원 의사 한 분과 간호원 세분이 무료진료를 하는 것을 도왔다. 셋째 날엔 여름 성경학교 유치부 어린이들과 놀이시간을 즐겼고 이어 동네 노인들을 모시고 경로잔치와 어린이 노래대회를 열었다.
이 외에도 매일 예배와 성경공부, 평가회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냈으며 넷째 날 오후에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오현교회를 떠났다.
한편 이 하기봉사를 위해 중․고별로 헌금예배를 드렸는데 중학교는 7월9일에 고등학교는 7월11일에 각각 예배를 드려 모금된 헌금으로 하기봉사 활동의 모든 비용으로 쓰였는데 물론 기증한 풍금도 여기서 지출되었다.
당시 봉사일지를 기록한 중3 엄교숙 학생의 글을 읽어본다.
7월28 월요일
목사님 이하 세 분의 선생님과 중․고 12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하기 봉사대는 이날 오전9시 간단한 출발 예배를 본 후 경기도 김포군 검단면 오류리 작은 개척 교회로 출발 3박4일의 하기 봉사를 시작했다. 12시 전원 도착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일부는 교회 위 공터에 텐트를 쳐서 우리가 어린이들을 가르칠 오현 여름 성경학교를 만들었다. 또한 일부는 어린이들을 모이기 위해서 행진을 시작했다.
아침부터 내린 비는 처음부터 우리의 일을 순탄하지 못하게 했다. 슬리퍼가 빠져서 잘 걸을 수 없는 진땅을 양손에 신을 쥐고 맨발로 걷다시피 하여 멀리 떨어진 마을까지 어린이들을 모으기에 최선을 다했다. 노력의 결과 우리는 비가 오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80명이라는 많은 학생을 모아 환영식을 무사히 끝냈다. 이로써 첫날 일정은 잘 추진되었던 것이다.
7월29일 화요일
아침 6시에 어린이들을 모아 아침 체조를 한 후 9시와 3시 반, 두 차례의 예배와 성경 공부를 통해 우리는 본격적인 우리의 일을 해 나갔다. 기도하라면 눈을 뜨고 장난을 치는 철부지들에게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주고 성경 공부 때는 ‘가르치는 교회’ 라는 성경학교 표어 아래 신앙을 심어 주기에 힘썼다.
특별히 융판에 그림을 붙이면서 동화를 들려줌으로써 어린이들에게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흥미를 심어 주었다. 또 한가지 오후 시간의 ‘최후의 이적’ 이라는 인형극은 어린이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 그리고 회화 색칠 대회와 ‘하나님께 드리는 편지’ 라는 제목의 글짓기 대회시간을 마련하여 어린이들이 그렇게 멀게만 생각하는 하나님과 점 더 친근해질 수 있게 했다. 어린이들은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해주어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보람을 주었다.
7월 30일 수요일
이 날은 교회 옆에 있는 단봉 국민학교 운동장을 빌어 ‘꼬마 올림픽’을 열었다. 다윗팀과 삼손팀으로 나누어서 이민우 선생님의 진행으로 수영, 풍선 터뜨리기, 밀가루 속 보물찾기, 외다리 경기 등 마음껏 뛰놀고 웃으며 하나님이 주신 건강한 신체에 다시금 고마움을 느끼게 했다. 또한 노래자랑도 마련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특히 유치부 어린이들의 깜찍한 율동은 눈길을 모았다.
우리의 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단지, 어린 심령 위에만 신앙의 씨를 뿌리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아직도 주님을 모른 채 외롭고 쓸쓸한 노인들에게까지 주님의 사랑을 전파하기에 힘썼다. 그래서 우리는 경로잔치를 열었다. 약소하지만 따끈한 떡, 수박화채, 토마토를 준비하여 정영미 양의 사회로 다채롭게 진행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흥에 겨워 춤을 덩실덩실 추셨다. 특별히 중학교 4명 대원의 촌극 ‘룻기’ 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커다란 웃음을 선사했다.
7월31일 목요일
마지막 행사로 요절 암송대회를 열었다. 까만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며 다음 구절을 생각해 내는 어린이들은 모두 열심이었다. 이 날 예배 후 각 반별로 성경 공부를 할 때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여름 성경학교가 끝났지만 계속 나와서 주님의 착하고 공부 잘 하는 어린이가 되라고 강조를 하고 마지막 공부를 했다. 못내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울기까지 했다.
이제 어린이들은 선생님들과 계속 교회에 나오기로 약속했다. 언제나 이 마을에 이 노래가 메아리 치리라. “주님이시여! 어린 영혼들, 잘 못하면 떠내려가 버릴지도 모르는 이 어린 영혼들 속에 심은 신앙의 씨를 당신이 끝까지 자라게 하시여 열매를 맺게 하소서. 한 알의 무르익은 밀알이 되게 하소서.” -아멘-
제4회 인천시내 기독교 학교 대합창제가 1980년 12월 16일 오후 3시와 7시 두 차례에 걸쳐 인천시민회관에서 열렸다.
숭덕여중, 영화여중․고의 합창단이 총 출연한 이날 합창제는 영화여실고의 교장이신 서기택 선생님의 인사말로 시작하여 연합 합창단이 헨델의 ‘할레루야’를 끝으로 행사를 마쳤다.
중학교는 정인미 선생님의 지휘, 김리다(중2)양의 반주로 ‘다윗의 아들에게 호산나’ ‘이 땅에 평화 있게 하소서’를 불렀고, 고등학교는 박영숙 선생님의 지휘와 김현옥(고2)양의 반주로 ‘노래하자 노엘’, ‘아베마리아’를 불러 합창 인성의 이름을 더욱 새롭게 하였다.
이날의 행사를 위해 중(100여명)․고(100여명)합창단은 지난 11월부터 점심 시간과 방과 후를 이용해서 열심히 연습해 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