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

  • 성실한 전진 1967.04

    제1절 기독학생회 임원선거

     

    1. 기독학생회 정부회장 및 각 부장선출이 1967년 4월20일에 있었다.

    이 임원단들은 동년(同年) 12월1일에 개선되었는데 이는 3학년 학생들의 졸 업을 즈음하여 미리 고2학생들로 구성하기 위해서였다.

     

    제2절 개교 15주년 기념과 10년 근속교직원 표창

     

     

    제3절 학교신문 창간호 발행

     

    학생회에서 67학년도 봄에 처음으로 ‘인성’이라는 이름으로 발행된 학교신문은 매년 교지와 함께 꾸준히 발행되었다. 왼쪽 상단엔 성경구절이 호마다 다르게 적혀있는 것이 기독교학교 신문임을 한 눈에 보여주고 있음이 특징이라 하겠다. 연 2회 학기별로 발행되던 것이 호를 거듭하면서 계간으로 바뀌어 1986년 7월 12일 16호로 마감한 듯 싶더니 1996년 2월 13일 속간되어 2002년 현재까지 긴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학교성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귀한 자료이다.

    이 학교신문 2호에는 앞에서 언급한 무궁화 공민학교와 인성의 문을 지나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국민(현초등)학교 교사가 된 최선옥 교사의 글이 실려있다.

     

    제4절 창의적 클럽활동

     

    1967학년도 고등학교에 특별활동부서가 원예반, 사생반 과학반, 영어회화반이 신설되었고 68년에 다시 수예반, JRC, 연극방송반, 양호반, 주산반, 성경반, 향토연구반, 영화감상반이 신설됨으로 학생들의 적성과 특기 향상에 매우 중요한 교육이 되었다.

     

    제5절 책읽기 운동 적극 장려

     

    본교에서는 1967년부터 중1에서 고2까지 4년 동안 학생들의 독서열을 높여주고 정신적 성숙을 위해 계속 실시해 온 작문 시간에 전원에게 무조건 명작 소설을 읽히는 학급문고 제도를 실시한바 많은 양서를 마음껏 읽을 수 있게 마련하였다. 

     

    제6절 추수감사절 행사의 확대

     

    매해 11월에 거행되는 이 행사가 1967년에도 다채롭게 계획되어 엄숙하면서도 열띤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이 행사의 목적은 이런 행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의 보살핌에 고마움을 깨달아 자신이 건강하게 학업에 전념할 수 있음을 감사할 뿐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계기로 삼았다. 이 감사 축제는 기독교적인 분위기를 이해하고 기독교인이 되는 회심의 기회가 되길 바라는 의미의 행사 프로그램으로 짜여졌다.

     

    1. 예배- 중고등학교 다같이 17일에 모여 예배 때 드린 헌금의 쓰임을 의논한 결과 당시 영호남지구의 극심한 한발(旱魃)로 인하여 생긴 한재민(旱 災民)을 돕기로 하였다.

    2. 합창콩클-지정곡과 자유곡 두 곡을 부르는데 중학교는 16일에 고등학교는 17일에 거행하였다. 콩쿨 방법은 무반주로 학급 전원과 담임 교사가 참가하였다.

    3. 체육대회-경기 종목은 중 1학년은 피구(선수 인원40명) 중2학년 이상은 배구로 하였다.

    4. 성경퀴즈-학생들의 성경지식을 높이고 신앙심을 더욱 돈독케 하기 위해 새로 마련한 프로그램인 것이다. 방법은 각 반에서 7명씩 선수가 출전하여 동학년 학급대항으로 1차 전을 시행하여 학년 선발반을 선발하고 2차 전에서는 학년대항으로 겨루되 3학년은 무전승으로 결승에 진출하도록 하였다.

    5. 환경미화-1,2차 평가에서 받은 점수와 행사 기간동안 받은 점수를 종합하여 시상하기로 했다.

     

    제7절 중학교 전기 입학고사와 합격자 발표

     

    당시에는 중학교 진학 시, 학생자신이 원하는 중학교에 원서를 넣고 입학시험을 치렀다. 입학시험이 1967년 12월1일에 있었고 합격자는 나흘 후인 4일에 발표되었다. 다시 12일에 중학교 2기 입학고사가 있었다.

     

    제8절 중학교 2부 입학고사

     

    본교에서는 1968학년도부터 중학교에 2부 4학급을 두기로 문교부 승인을 1967년 10월28일자로 받았다. 중학교에 2부를 두려는 것은 아래의 이유에서였다.

    첫째, 도시 주민들이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는 고조되어 있어도 수용할 만한 학급수가 적어서 진학 희망자를 현재로서는 다 수용할 수 없는 상태이고

    둘째, 가정사정이나 기타의 특수한 사정으로 오전시간이나 오후전부를 학교 생활에 몸을 맡길 수 없는 사정을 고려하였으며

    셋째, 기독교 교육기관에서 얻어지는 교육경험과 생활경험을 가진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가정이나 사회에 진출시켜서 그들이 가는 곳에 은연중 기독교적인 생활윤리가 세워지면 우리 국가나 민족이 도의(道義)에 어긋나지 않는 생활을 하게 되리라는 본교의 설립 목표에 따른 것이다. 이로써 중학교는 1968학년도부터 1부 6학급, 2부 4학급 모두 10학급의 학생이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본교의 2부제는 야간제와는 달리 수업을 일찍 시작하여 이른 시간 안으로 끝나게 하였다.

  • 소질 계발과 정서 함양의 열매 1967.09

    제1절 수도여사대 음악콩쿨에서 김양숙양 입상

     

    1967년 9월 27일부터 29일에 걸쳐 수도여자사범대학에서 주최한 전국여자고등학교 음악 콩쿨에서 고2 김양숙 양이 성악부에 참가, 조동인 선생님의 반주로 27일 예선을 거쳐 그 다음 날인 28일 본선까지 나아가 영예의 3등을 차지하였다.

    김양숙 양은 다음 해인 1968년 숙명여자 대학에서 주최한 제10회 전국 여고 음악경연대회에서도 모차르트 곡의 「휘가로 결혼 중」의 아리아를 불러 3등에 입상했다. 독창 부분에서 1등이 없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2등인 셈이다.

     

    제2절 수도여사대 음악 콩쿠르에서 합창부 1등

     

    1968년 10월 31일에서 11월 1일까지 서울 수도여자사범대학의 연례 행사인 전국여자고등학교 음악 콩쿠르에서 본교 합창반이 영예의 1등 상을 차지하였으며, 독창 부문에서 작년에 동 콩쿠르에서 3등을 한 바 있는 김양숙(고3 의3) 양이 장려상을, 기악 부문에서도 박인신(고3의3) 양이 바이올린 독주로 써 장려상을 받아 평소에 길러온 본교 음악교육의 실력을 전국에 떨쳤다.

    이때에 부른 합창곡목은 스튼스의 「새날은 왔네」와 마스카니의 가극 「카바레리아루스티카나」 중에서 「아침기도」이며 이 곡은 18일 시민회관 에서 열린 수도여사대 창립21주년 기념 전국 남녀 중․고교 합창제를 위해서도 노래했다.

    이 합창제에는 전국 14개교가 참여하였으며 감사장도 받았다.

    1969년 10월 7일 수도 여자 사범대학 대강당에서 베풀어진 수도 여자 사범 대학 주최의 전국여고음악경연대회에 본교 합창부가 참가하여 영예의 2등을 하였다.

    1968년에도 동대회에 참가하여 우승한 경력이 있는 본교 합창부가 1969년 에 애석하게 2등에 그쳤으나 이로서 2년 연속 입상의 영예를 누린 셈이니 더 분발의 계기로 삼을 뿐이다. 참가 곡목은 자유곡으로 “봄 오기를”(슈베르 트)와 “새들 중 으뜸 새는 뻐국새”(윌케스) 였으며 반주에 한명숙 선생님 지 휘 및 지도에 조동인 선생님이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제3절 작곡상 3등, 박영숙 양

     

    숙명여자 대학교에서 연례행사로 개최하는 전국여고생 음악콩쿠르에서 고3 의 박영숙양이 개인 출전하여 작곡 부문에서 1, 2등 없는 3등을 차지하여 실질적으론 최우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1969년 10월 6일 1차로 예심 테스트에서 지정곡을 변주시키는 과제를 무사히 통과하여 다음날 2차 본심에서 「박목월」작시 「산이 날 에워싸고」를 자신이 작곡하여 이와 같은 좋은 실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 전국 각처에 서 참가한 많은 음악도(音樂徒)들 가운데서 유일한 입상자인 박 양에게는 숙 명여대 입학시엔 실기시험을 감안해 주는 특전이 베풀어질 것이라는 대학 당국의 발표 때문에 상장과 상품(목각 조각품)을 받아 안은 박 양의 기쁨은 한층 더 컸다.

    박 양은 평소에도 항상 학급의 합창지도를 맡아 왔고 본교 교내 큰 행사와 예배가 있을 때마다 피아노 반주를 혼자 맡아온 숨은 공로자이기도 하다.

     

     

    제4절 중등 교육 문화제에서 두각을 나타낸 본교생 작품

     

    1967년 10월 14일 제1회 중등 교육 문화제가 인천시내 중․고등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이 참가한 가운데 동산고등학교에서 열렸는데 이 행사 중 중요 일정의 하나로 강당에서 미술 및 시화 작품 입상자 표창이 있었는데 본교에서는 10개 부문 중, 3개 부문에 입상하여 학교의 명예를 빛내었다.

    특히 고2의 김채봉, 김혜경, 홍명자 3명이 합작한 회화「코스모스」가 1등을 차지하여 10개 부분 중, 최고 영예인 경기도 교육감상을 받았다.

    그리고 고3 안진영 작인 「겨울이 오지 않는다 해도」가 시화 2등, 고3 조 명옥작 「석양」이 시화 3등에 각각 입상하였다.

    또 1969년에는 작품전에서 본교생 김혜경, 김채봉(고3) 공동작 「첫눈」이 특선을 수상했으며

    제16회 교육주간을 맞이하여 10월 6일부터 12일까지 대한교육연합회 주최 및 인천시교육청 주관으로 「반공과 건설을 위한 인간교육」이란 표어를 내 걸고 여러 가지 뜻깊은 행사를 치루었다.

     

    제5절 숙명여대 백일장에서 우수상 2석(席)

     

    1968년 4월 23일 숙명여자 대학교의 개교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하나로 전국여고생을 상대로 하는 백일장에서 고1의 이희주 양이 우수상 2석이란 영광을 차지하여 상장과 부상(파카만년필 및 김남조 시집)을 받았다. 시상식에서 심사위원이신 서정주 시인이 하신 희주양의 평은 시(詩)란 것은 남에게 얻어들은 풍월로서는 도저히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인데 자기의 독창적 인 세계를 자기 표현으로 잘 살려냈다고 평(評)해 주셨다.

     

    제6절 전국남녀 백일장에서 수필 3등

    제7절 숙명여자대학교주최 장려상

     

    제8절 도약하는 인성 농구부

     

    이미 인성 농구부의 눈부신 활약상은 전국적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1968년 10월에 열렸던 전국 체육대회에서 중・고 팀 모두 경기도 대표 팀으로 선발됨으로서 본교 농구팀은 제43회 전국 체육대회 이래로 계속 여섯번째 전국체전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이번 연세대 체육관에서 거행된 경기에서 중등부 팀은 10월 6일 경남여중과 대전하여 승리를 거두었고 7일 중등부 팀은 전북 남성여중 팀과, 고등부 팀은 강호 서울 숭의여고 팀과 대전하여 선전(善戰)했으나 모두 석패(惜敗)하였다.

    또한 10월 26일부터 29일 사이에 열린 제3회 숙대 총장기 쟁탈 전국여자고등학교 농구대회에 참가하였었는데 여기에는 서울의 8개 팀과 유일한 지방팀인 본교 팀이 참가하여 도합 9개 팀이 토오너멘트로 대전(對戰) 한 바 있었다.

    본교 팀은 첫날 첫 게임에서 강호 상명 팀과 격돌, 이를 물리쳐 감격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튿날은 우승후보의 강적 덕성 팀과 대결, 선전하였으나 분패하고 말았는데 덕성 팀은 이 대회에서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우승하였다.

    본교 농구팀이 불리한 여건아래에서도 이만큼 성적을 낸 것은 박해성 코치의 지도 아래 선수들 전원이 부단히 노력한 결과라 하겠다.

    한편 고등부 팀 주장 원영례 양이 국민은행에 스카웃 되었다.

    제5회 숙명여대 총장기 쟁탈전이 1969년 10월 20일부터 숙대 체육관에서 입장식과 함께 성대히 개최된바, 경기도 내에서만 항상 연전연승(連戰連勝) 을 자랑해 오던 본교 농구팀이 참가하였다.

    첫날의 대전에서는 서울 명성여고와 막상막하의 아슬아슬한 게임을 벌여 54:64로 석패하였으나 다음날 패자전(敗者戰)에서 서울의 강팀으로 알려진 수도여고와의 게임에서 65: 61로 쾌승(快勝)하였다.

    이리하여 경기도내에서만 실력과시를 보이던 본교 농구팀은 서울의 중앙 무대에서도 전국 우승 후보팀과 겨뤄 부끄럽지 않은 전적(戰績)을 쌓아 나갔다. 계속해서 22일엔 전국 최강팀인 덕성여고와의 시합에서는 아깝게 분패하여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제9절 배구부의 처녀 출전

     

    1968년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열린 경기도 학도 체육대회에 본교 필승의 농구팀(중고)과 4월 11일자로 배구협회에 등록을 마친 배구팀(중학교만)이 처음으로 출전하였다. 특히 배구부는 초창기의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해 가면서 연습해 오다 창설이후 첫 출전이라 그 기대가 자못 컸다. 당시 배구부 코치는 최병철씨였다.

    다음해인 1969년 4월 4일에 경기도 배구협회에서 개최한 도내 중・고교 배구 연맹전에 출전한 본교 중학교 배구 팀은 창설 된지 일주년도 채 못되는 약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3전3승이란 압승(壓勝)의 실력을 나타내어 우승컵과 우승기를 타 왔다.

    그 전적교(戰績校)는 분전여중, 영화여중, 인화여중이었다.

     

  • 교사(校舍) 확장 1968.02

    제1절 대강당 대지 매입의 역사

     

    1968년 2월 대지 587평 건물514평을 매입하였다.

    (화보의 체육관 변천편 참조)

     

    제2절 국민학교 교사 증축

     

    인성국민학교는 그간 많은 발전을 하여 오던 중 다시 2개의 교실을 증축하였다. 1967년 9월에 착공하여 1968년 3월말에 준공함으로 4월초부터 사용할 수 있었다. 5월9일 국민학교 교무실에서 관계자 몇 분과 교사들이 참석하여 간단한 낙성식 예배를 드렸다.

     

                                                   - 국민학교 신축교사

     

  • 사랑과 봉사를 통한 실천적 생활 경험 1968.03

    제1절 J・R・C 단원 활동

     

    1968년에 신설된 J・R・C는 Junior Red Cross의 약자로 청소년 적십자란 뜻이다. 인도, 공경, 중립, 독립, 봉사, 단일, 보편의 7대 원칙으로 박애와 봉사, 보건과 친선의 씨를 사회에 뿌려주는 역할을 하는 모임으로 이는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 위에 피어난 「앙리・뒤낭」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루어진 적십자 정신과 맥을 같이 했다.

    이들 청소년 적십자 단원들은 우선 ‘나는 청소년 적십자의 단원으로서 몸과 마음을 건전히 하여 박애와 봉사와 친선의 정신으로 나의 이웃과 학교와 향토와 국가 및 세계 인류를 위하여 봉사할 것을 맹세합니다’ 란 선서식을 갖는다.

     

     

    제2절 기독학생회 활동

     

    1. 결핵요양원 방문

    1967년 9월18일 이동욱 교장선생님과 김덕용 선생님 그리고 박희순 선생님 과 함께 김정숙(고3), 나성자(고3), 임은숙(고3) 등 기독학생회 임원들이 결핵 요양원을 방문했다.

     

    2. 1968년 10월 9일 오후 1시에 본교 기획위원 (유병제를 비롯한 8명)들은 최 상근 선생님을 모시고 그 동안 기독학생회에서 자치적으로 폐품을 모은 것을 처리하여 생긴 수입금으로 시내 도립병원의 무료 환자들을 위문하기 위한 방문을 가졌다. <인성여중고 기독학생회>라고 새긴 커다란 거울을 증정하고 준비해 간 과일과 빵을 간식으로 나누어드리며 찬송과 기도, 그리고 설교로써 병약해진 그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 지기를 기원하며 위로해 드리고 돌아 왔다.

    폐품 수집 상황은 중 1의 8반이 가장 우수했으며 둘째 고 1의 4반이었다. 이들 2개 반에 학생회 봉사부에서 간단한 상품을 나누어주었다.

     

    3. 1969년 기독학생회는 K-SCM (Korean Student Movement-한국 기독학 생 운동회) 여름대회도 참석하였다. 이 모임은 1948년 4월 25일에 창립하여 예수교 장로회, 기독교장로회, 감리교 ,구세군, 성공회가 연합이 되어 한국 기독학생회가 구성되었다고 한다. 목적은 자아확립과 복음전달, 그리고 교회 갱신, 사회참여와 국제 관심으로 학원과 교회, 전국과 세계로의 복음 전파의 길이 열린 자리로 본교 기독학생들의 활동도 좁은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의 활로를 향해 매진함이었다.

     

  • 고3 사회반(社會班) 학생들의 개가(凱歌) 1968.09

     

    본교는 인문계 고등학교로서 진학과 취업을 병행하는 학교 방침을 1968년 부터 세워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반 학생은 매해 졸업을 한 학기 앞둔 고3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대한 예비지식이나 직접적인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 국가 기관이나 개인 기업체에 나가 현지 실습을 10일 내지 20여 일간 익히게 했다. 이러한 실습제도는 졸업생들의 취직률에 많은 도움이 되어 졸업 전에 취업이 확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인성교육의 결실 1968.10

    제1절 종합 평가에 본교가 우수학교로 지정됨

     

     

     제2절 처음으로 맞는 교생 선생님

     

    본교가 설립된 이래 처음으로 맞는 교생실습이 10월11일부터 3주 동안 있었다. 여기엔 본교 제1회 졸업생이며 당시 고려대학교 사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던 조성훈 교생도 있었다. 처음 교생 실습을 나왔을 때의 소감을 묻는 학보 기자에게 “정말 많이 변했더라. 내가 배우던 교실은 현재 국민학교 교사였거든. 너희들은 참 행복한거야. 아무쪼록 환경에 너무 억매이지 말고 자기를 곧게 살리며 분투 노력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라고 후배들에게 부탁하였다.

     

    제3절 대학 입시가 예비고사로 변경

     

    1968년 10월 14일 문교부는 교육혁신 제3단으로 「대학입시예비고사」제를 발표하였다. 그 내용은 초급대학 교육대학을 포함한 대학에 진학을 희망하는 사람은 이 예비고사에 합격한 자에 한해서 응시자격이 주어졌다. 1969년도 졸업 예정자 수는 129,407명으로 그 중 대학정원 41,730명의 1.5배인 약 6만 명만 예비고사에 합격할 수 있었다. 시험과목은 국어, 수학, 영어, 과학(물리, 생물, 화학), 사회생활(일사, 세계사, 지리) 등이며 객관식 방법으로 출제되었다. 단 예능계(미술, 음악, 체육계) 진학자는 예비고사 없이 직접 입학시험에 응할 수 있었다. 예비고사 합격 유효기간은 일개월간으로 가령 재수를 할 경우에는 다시 예비고사를 보아야 했다.

     

    제4절 교육의 질적 양적 팽창

     

    1968학년도 교직원 수는 교장 교감외 정교사 38명, 서무과 직원 6명을 합해 모두 46명이었다. 2002년 교장이신 조성훈 선생님이 당시 사회과 교사로서 중 1의9반 담임이었으니 그 분의 삶은 곧 인성교육의 산 증인이라 하겠다.

    1969년에 들어와 한문(漢文)과목이 폐지되고 대신 윤리(倫理) 과목이 생기면 서 교장(校長)과 수학을 가르쳤던 박원호 교감(校監)이 이 시간을 담당했다. 즉 교장도 수업시간을 담당했던 것이다. 동년에 지학과(地學科)가 시간표에 자리하고 물상(物像)은 물리(物理)라 불렀다.

    1969년은 작년도에 비해 교사 수가 무려 8명이나 충원되어 서무직 6명을 포함하면 총 54명의 대가족으로 불어났다. 이는 곧 인성 교육의 내실화는 물론 번영인 것이다.

     

    제5절 학력 평가 실시

     

    한 학기에 3회씩 연 6회 학력고사를 실시하여 학력 향상에 힘쓰고 가정에 자주 통지하여 학부모에게 알렸다.

     

    제6절 장학시찰단 내교

     

    중학교 무시험 추첨 진학제도의 제2차 실시 대상인 인천 시내의 각 학교를 시찰하고 평준화 작업을 위한 검토를 위해 3월 25일 문교부의 서(徐) 장학관 님, 한(韓) 장학관님과 도교육위원회의 관리국장, 인사계원, 안(安) 장학사님들 이 본교엔 다녀가셨다.

    이번 장학관님들의 시찰 기준은 교사평준화, 시설평준화 등인데 본교의 경우 엔 특히 교사진이 우수하며 수업내용들도 양호하다는 평을 하였다.

     

    제7절 장학생 선발

     

    1968년도까지 시행해 온 장학생 선발 방법은 각 학기마다 중간고사와 학기말 고사에 의해 80점 이상 자를 대상으로 등록금의 일부 또는 전액을 지불해 주었던 것을 69년도 첫 학기부터는 이를 새로 개정하여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와 겸하지 않고 따로 장학생 선발 고사를 보되 표준화된 실력 테스트와 좀 더 객관성 있는 타당도에 의해 장학생을 엄선하려는 것이 개정의 목적임과 동시에 고사의 빈도가 잦아짐에 따라 학생들의 학구열을 높이려는 의도도 있었다.

     

    제8절 신관 신축 교사에서 첫 수업(고2학년 전용)

     

    신축(新築)을 거듭하는 <인성>의 얼굴이 될 새 건물이 또 하나 그 모습을 갖추었다. 자연 증가하는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교실 증축을 서둘러 1968년 가을에 착공하여 짓기 시작한 것이 신관 건물의 일부인 일층 교실만 완성하여 고 2학년, 네 학급이 들어와 1969년 신학기 초부터 수업을 시작하였다. 계속해서 위층들도 올리는 공사를 하고있지만 다른 학년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조용해서 좋고 책걸상까지 새것으로 갖추어 놓아서 새롭고 아늑한 분위기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고 고2학년들은 입을 모아 즐거워했다.

     

    제9절 장한 어머니 표창

     

    5월 8일은 세상의 어머니들이 어머니로서의 행복을 가슴 벅차게 느끼는 날. 본교에서도 조촐한 축하 잔치를 벌였다.

     

    1. 제1부 예배와 표창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대명사인 어머니! 낳아주고 길러주신 절대의 어머니로 모두 장하고 훌륭하나 그 중에서 몇 분을 뽑아 장한 어머니로 기리는 행사를 중 ・고별로 가졌다.

    2. 제2부 영화 감상

    9시부터는 전교생의 어머니를 본교 강당(제일회관)에 모시고 교장선생님께서 인사말씀을 하신 후 고2 노진숙 양의 “어머니께 올리는 글”을 낭송하여 어머니의 마음에 어린 딸의 정성을 다시 한번 새겨 드리고 이어서 극영화 “춘향 ”을 상영해 드렸다.

     

    제10절 인천시로부터 저축상 받다

     

    국민소득 증대와 국민생활 안정을 위한 국가 시책의 하나로 온 국민들의 저 축 장려를 강조해 온바 정부에서는 매달 25일을 “저축의 날”로 정하고 갖가지 행사를 가지는데 본교는 지난 9월 25일 저축실적이 매우 우수하다고 하여 유 병택 인천시장님으로부터 저축상과 상품(벽거울)을 받았다. 이날의 시상식엔 교장선생님이 직접 참석하셔서 시상을 수여 받았으며 본교 합창단원들이 ‘저 축의 노래’와 ‘축가’ 를 불러 식(式)을 더욱 빛내 주었다하여 기념품으로 고급 손수건도 각각 한 장씩 선사 받았다.

     

    제11절 로터리클럽에서 야외용 천막기증

     

    10월 10일 로터리클럽 인천지부에서 본교에 야외용 천막 한 개를 선물로 보내와서 교감 선생님과 학생회 부회장 유인숙양이 참석하여 그 인수식을 간단히 가졌다.

    동 클럽에서는 그들의 연중사업 계획의 하나인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으로 일년에 몇 개의 텐트를 시내 학교에 선물하였는데 이번에 특별히 동 클럽 의 사회봉사 위원장으로 계시고, 인성초등학교 학부형도 되시는 윤영원씨께서 본교를 위해 애써주셔서 다른 학교보다 우선적으로 먼저 기증 받게 된 것이 다.

     

  • 70년대 성년(成年)이 된 인성의 변모 1970.02

    제1절 중학교 평준화

     

    1969년부터 중학교 무시험 진학 제도로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경쟁시험에 의한 입학이 아니라 학생들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중학교의 학교 군별(群別) 추첨에 의한 중학교 배정이었다. 인천에서는 1970년 2월3일 중학교 무시험 추첨이 실시되었다. 자연히 학력이 우수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과의 반 편성에 여러가지 문제가 연구과제로 대두되었다.

     

    제2절 교육활동면

     

    1. 교무과의 사무분장

    교무과를 크게 교무부와 연구부로 나누었다.

    본교의 1970학년도 교육운영계획서에 기재되어 있는 학교 기구 조직표는 다음과 같다.

    2. 생활지도 부서

    3. 생활지도의 목표

    4. 생활지도의 영역

     

     

    제3절 개정된 고사제도

     

    학생들의 학력신장을 위하여 그 동안 한 학기에 3회 정도 치루던 시험을 1970학년도부터는 매학기 5번으로 늘렸다. 개정된 고사제도의 명칭은 A,B,C 고사라 하고 A 고사에는 국어, 영어 ,수학 3과목을. B 고사 때는 국어, 영어, 수학, 가정, 사회, 과학 등 6과목. C 고사는 전과목을 보았다.

     

     

    제4절 중․고 교감 분리하여 취임

     

    1971년도3월에 중학교 교감과 고등학교 교감을 각각 분리하여 임명하였다. 중학교 교감엔 김덕용 교사가 고등학교 교감엔 박원호 교사가 취임하였다.

     

    제5절 교목실장에 음악전공인 조동인 교사가 임명되었다.

     

     

    제6절 학교 복지시설

     

    1. 실내 체육관 개관

    1970년11월19일 오랜 숙원이던 실내 체육관이 개축 완공되었다. 7월초부터 개축 공사를 시작하여 만 4개월만에 이뤄낸 이 곳은 대지 587평에 건평514 평. 바닥면적 172평의 거대한 체육관으로서 이 체육관이 개관됨으로 학생들 의 체육향상에 한층 더 활기를 띄게 된 셈이다.

     

    2. 180여 석의 도서실 준공

    해마다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는 본교는 1971년 신관 4층에 80 평의 180석 의 커다란 도서실을 갖게 되었다. 동년 3월에 착공하여 6월에 준공된 이 도 서실은 그동안 2천여 명의 전교생이 이용하기엔 매우 비좁았던 어려움을 해 소해 줄뿐 아니라 천여 권의 장서를 더 늘여서 완전 개가식의 도서실운영을 해나갔다.

     

    3. 특별교실 및 제2 교무실 마련

    도서실과 더불어 준공된 4개의 교실 증축으로 실습실, 조리실, 시청각실, 미술실, 음악실 등의 특별 교실이 마련되어 그 동안 불편했던 수업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또한 본관 식당 위층에 있는 교실은 제2교무실로 쓰여져 각층에 분산되어 있던 교사들을 한 곳에 모임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던 수고가 없어지고 4층 교목실과 도서실이 번거롭지 않아 학생들의 정서교육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4. 학교입구를 포장하고 양측을 미화했다.

     

    5. 체육관 샤워장 개장

    한 달 동안의 난공사(難工事) 끝에 체육관 샤워장이 드디어 1971년 6월 17 일 개장되었다. 8평 남짓한 이 샤워장은 한꺼번에 10명 정도가 함께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이다. 공사 중에 특히 힘들었던 것은 자동식 물탱크 장치로 항상 쓰기에 충분한 물을 저장할 수 있게 한 것인데 아직 보일러 장치가 되어 있지 않아 온수는 쓸 수 없지만, 더운 여름에 학생들, 특히 운동부들을 위하여 다행한 일이었다.

     

    6. 학급 증설

    1971년 12월 20일 고등학교 3학급 증설되어 모두 15학급이 되었다.

     

    7. 학교 단장

    1972년도 학교 미화 작업의 일환으로 교사(校舍)를 산뜻하게 단장하였다. 그동안 주로 내부 시설에 신경을 써오던 것을 이젠 외모를 좀 산뜻하게 꾸밀 양으로 시작 된 작업인데 이것은 스쿨-칼라(학교색)를 만들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우선 어느 색도 잘 받아드리는 맑은 양회색으로 칠을 했다. 좀 어두웠던 교사가 밝아지면서, 훨씬 넓어 보일 뿐만 아니라 그 주는 이미지도 밝아졌다.

     

    8. 학교를 잇는 구름다리 착공하다

    체육관을 이용하려면 한길을 건너야 하므로 늘 교통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었는데 이제 길을 건너지 않고도 체육관으로 곧바로 갈 수 있도록 운동장과 체육관 사이를 잇는 구름다리가 1973년 4월초에 착공하여 5월말에 완공되어 6월부터 학생들이 이용하게 되었다. 이 일은 본교 육성회 부회장인 홍복만 님의 전적인 도움으로 시작되었다.

     

        - 육교 준공식   

      - 준공 육교 건너가기(중학생)

              

    9. 급수실 마련

    끓인 물이 모자라 오후에는 냉수를 먹어야하는 불편을 막기 위해 1974년 5월 초 학교에서는 본관 1층에 본교생에게 끊인 물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급수실을 마련하므로 계절의 구별 없이 항상 온수(溫水)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10. 운동장 확장

    좀더 넓은 운동장에서 중․고등학교 전교생들이 모여 조회나 여러 가지 행사를 함께 하고 싶었던 소망이 이루어졌다. 1974년 9월 5일부터 운동장 확장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이는 학교 주변의 집을 사서 약 400여 평이 되는 땅을 넓혔다.

     

    제7절 교직원 수양회

     

    학교 운영자는 교육시설 못지않게 교직원 조직에 혼신(渾身)의 힘을 다하고 또한 교직원 현직연수 등을 통하여 항상 장학(獎學)을 하면서 교사 자질향상을 위해 힘썼다.

    여기서 일반연수는 다른 학교에서도 통상적으로 실시하던 연수로 지도 기관의 지시에 따라 실시한 것이다.

    그러나 본교는 기독교 학교로서 매년 여름 방학 중에 교직원 수양회를 가졌던 것이 특색사업이었다.

    이때는 예배와 현직교육분과협의회 등을 통하여 좀더 바람직한 인성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하는데 그 의의(意義)가 있었다.

     

    제8절 학생 써클 활동의 확대

     

    1. G.S 발대식

     2. Y.F.C의 활동

     

     

    제9절 동창회 활동

     

    1. 백합합창단 발족

    동창회 이름을 딴 이 백합합창단은 1970년 1월 본교 합창단 출신의 졸업생 27명으로 창단하여 동년 10월 15일에 제1회 발표회가 있었고 1971년 11월 20일에 제2회 발표회를 가졌다. 전문적인 단체는 아니더라고 인성의 울타리 안에서 키운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모여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냄은 참으로 각박한 삶 속에서 찾은 샘물처럼 영적(靈的) 목마름이 채워지는 귀한 시간이었다. 여기에는 동창회를 비롯하여 고문위원회의 많은 협조가 있었는데 회원 각자도 바쁜 시간을 틈내어 열심히 연습한 좋은 결과였다.

    또 72년 11월 27일 본교 강당에서 제3회 발표회를 하였다. 조동인 선생님의 지휘로 약 10여 곡에 달하는 합창과 김양숙 선배와 오창희 선배의 찬조출연이 있었다.

  • 명랑하고 즐거운 학교생활 경험 1970.03

    제1절 자아 성숙을 위한 훈련

     

    1. 지도카드제 실시

    본교에서는 학생들의 보다 나은 학습태도와 바람직한 교내생활을 위해 1970 학년도부터 「지도카드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지도 대상은 학습태도나 교내생활을 특별히 지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학생으로 카드의 종류를 백색, 황색, 홍색의 삼종으로 구분하고 백색 카드의 기록이 바람직하지 못할 때에는 황색, 홍색으로 그 지도기간을 각각 일주일간씩 연장하도록 하였다.

     

    2. 출석우수반 시상

    1970년부터 본교에서는 출석우수반을 선정하여 시상하였다.

    학생들의 출석의욕을 높이기 위해 취해진 출석우수반 시상은 출석률에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는데 이 시상에서는 한달 동안 5일 이하의 결석이 있는 반에 한했다. 이 해에 시상 받은 학급은 다음과 같다.

    4월 : 고2-1, 3-1 5월 : 중3-1, 3-5, 고1-2, 2-1, 3-2

    6월 : 중3-1, 고1-1, 고2-1

     

    3. 무감독 시험의 전통 수립

    자기의 실력대로 떳떳하게 시험에 응해 조금도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무감독 시험의 새로운 전통을 세웠다.

     

    4. 고 2․3학년 자율학습의 습관화

    1972학년 학기 초부터 고2, 고3이 각각 밤 8시에서 10시까지 자율학습을 실시하였는데 이도 역시 인성의 면학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5. 도서실 새벽 5시부터 개관

    1972년 4월부터 새벽 5시에 본교 도서실을 개관하기 시작했다. 이는 전교생 들의 학구열과 실력 향상을 위함이었다.

     

    제2절 소질 계발의 노력과 성과

     

    1. 문예부

    (1) 숙명여대 주최 백일장에서  장원

    (2) 문협 도지부 백일장에서도 인성 이름을 떨침

     

     

    (3) 5월9일 경기도 문인 협회 인천지부 주최로 실시된 초․중․고 글짓기 대회에서 시부 2등에 중3 최은혜 양과 가작 중3 장미희 양, 산문부 2등에 중1 전복례양이 각각 입상.

    (4) 조선일보사 인천지사 주최 글짓기 대회에서 시부 특선에 고3 윤경예양, 산문부 최고상에 중1 한이심, 특선에 고2 고윤경, 중2 김연단, 가작 중2 정 혜경, 입선 중1 김선숙, 외 14명, 총 19명으로 단체상 우승 트로피를 받았다.

     

    2. 합창반

    (1) 난파음악제에서 본교 입상

     

     

     

    합창부는 10월 11일 중앙대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 주최 제1회 전국고등학 교 음악경연대회에도 참가했다.

    (2) 음악경연대회 참가

    1972년 10월 5일 수도사대음악경연대회에 참가한 고 3 박현숙양이 성악부 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또한 10월 11일에는 숙명여대음악 콩쿠르에서 3등을 했다.

     

    3. 미술부

    (1) 전국 파스텔화 대회에서 영광 차지

    1970년 5월 27일 경복궁에서 열렸던 서울신문사 주최 <전국 파스텔화 대회>에서 인성의 딸들이 전국에서 모여든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실력을 발휘한바 있다.

     (2) 제4회 국제 청소년 미술 공모전에 다수  입상

    1971년 6월 26일 국제청소년문화교류회 주최로 가진 제4회 국제친선청소년미술공모전에 본교의 미술학도들이 다수 참석하여 좋은 성적을 나타내어 인성 미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 성적을 보면 전국청소년학생들이 응모한 작품 중에서 특상 없는 우수상 두 작품을 모두 인성이 차지했고 그 외 특선이 4명, 장려상이 7명, 입선이 16명이었다.

     (3) 전국기독학생미술공모전 참가

    제4회 ‘전국기독학생미술공모전’이 기독시청각교육국 주최로 1971년 10월 에 있었다. 기독교 정신으로 생활해 온 인성 학생들은 좋은 작품들을 출품해 우수한 성적을 냈다.

    (4) ‘경찰의 상(像)’ 그리기 공모전

    1971년 10월 21일 경우신문사 주최로 전국 중․고등부 ‘경찰의 상(像)’그리기 공모전이 있었다. 본교 학생들도 작품을 출품해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5) 1971년 10월 23일 홍익대학 주최로 전국 중․고등학생 미술실기대회가 홍익대학교 교정(校庭)에서 전국 각도의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성대히 실시되었는데 참석한 본교 학생들의 우수한 성적을 발휘했다.

    (6) 인천지구 중․고등학생 사생 실기대회

    1971년 11월 인천지구 미술장학회 주최로 ‘인천지구 중․고등학생 사생실 기대회’가 인천여고 교정에서 있었다. 

    (7) 1973년 6월 2일 유월의 태양이 내리 쬐는 가운데 이웃 학교인 제물포 고등학교에서 「인천지구 협동장학 미술분과위원회」주최 제4회 중․고등학생 미술실기 대회가 열렸 다수의 수상을 했다.

    (8) 1974년 5월 11일 자유공원에서 한국 미술 협회 경기도지부 주최 미술 실기 대회가 열렸는데 본교 60여명 학생이 참가하여 좋은 성과를 얻었다.

     

    4. 농구부

    (1) O․B 농구팀 제51회 국체에서 동메달

    본교 농구팀을 거쳐 사회에 나간 선배들로 구성된 인성 O․B팀이 제51회 전국체육대회에서 3위 입상하여 동메달을 받았다.

    거의 선수생활에서 은퇴하여 직장이나 가정에서 맡은 바 일에 충실하고 있던 이 선배들은 과거에 코트에서 뛰었던 실력을 발휘하여 쟁쟁한 후보팀을 물리치고 3위에 입상한 것이다.

    1971년 제52회 전국 체전에 경기도 여자 일반부 대표팀으로 출전하여 3위에 입상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로써 본교 O․B 농구팀은 전국체전에서 3년 째 동메달을 받은 것이다.

    (2) 제25회 전국 남․녀 종별 농구 선수권대회 참가

    1970년 7월4일 전국 128개 팀이 출전한 가운데 막을 올린 제25회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 본교 팀은 첫날 한양대학교 체육관에서 강호 무학여고 팀과 격전하여 54-42로 무학여고를 제압함으로써 기세를 올렸으나 이튿날 우승 후보 팀으로 손꼽히는 숭의여고와의 경기에서는 아깝게도 분패하고 말았다.

    (3) 1972년 8월 17일 경기도 체육대회에 참가한 중학교 농구부 팀이 우승을 했다. 다른 학교의 선수 구성과는 달리 중2 학생만으로 구성된 팀으로는 놀라운 성과였다.

    아울러 인성의 졸업생들로 구성된 OB팀은 전국 체전에 경기도 일반부 대표로 출전하여 충북팀을 물리치고 준결승에 올랐으나 강호 코오롱팀과 싸워 그만 지고 말았다 .그러나 동메달을 획득한 것은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5. 본교 중학교 배구팀 우승

    1970년 11월 7일 경기도배구협회 주최로 시내 남중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도내 남녀 중․고등학교 배구팀이 출전하여 당당히 우승하였다.

    이날 도내 12개 팀이 참가하여 열전을 벌인 연맹전에서 본교 배구팀은 남인천여자중학교 팀과 싸워 세트 스코아 2:0 스트레이트로 이겨 승리하였다.

    배구부를 맡아 수고해 주신 이는 최병철 코취이다.

     

    6. 창던지기 신기록 중3 박종신양

    청소년의 체력을 단련시키기 위한 경기도내 중․고등학교 학년별 육상 대회 가 1974년 6월 23일 공설 운동장에서 열렸다. 올해 처음으로 이종갑 선생님의 지도 아래 열심히 훈련한 본교 육상부에서는 단거리 달리기와 투척경기에 출전하였는데 투척경기에 창던지기에서 중3의 박종신 양이 예년의 기록보다 1m 30cm가 많은 24m 52cm를 기록함으로써 경기도내에서 신기록을 세워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7. 중학교 학생과학실험대회서 1등 

    1971년 11월 26일 인천고등학교에서 경기도 주최로 제5회 ‘중학교학생과학 실험대회’가 경기도내 각 중학교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본교에서는 중 2학년에서 참가, 1등의 영예를 차지하여 트로피와 부상을 받았다.

     

    제3절 학원 복음화 교육

     

    1. 예배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본교는 기독교 학교로 특별히 예수님을 영접하여 신앙을 키울 수 있는 예배 시간을 일주일에 한 번씩 가지되 종전에는 각 반이 주최가 되어 돌아가면서 예배 시간을 운영해 왔다.

    그러던 것을 1973년 5월부터 교목실에서 학생들의 신앙심을 높이고 학생들의 적극적인 신앙 활동을 권장하는 의도에서 예배 프로그램을 조금 다양하게 바꾸었다.

    즉, 반 주최로 보는 대예배에 곁들여,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웃을 위한 중재 기도회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학생들 주최로 열리는 헌신 예배 등을 첨가시켜 헌신 예배의 경우 한 교회에 다니는 학생의 수가 적으면 여러 교회에 다니는 학생들과 합동해서 드릴 수도 있도록 했다.

     

     

    2. 교회 출석 상황

    1972넌 9월중 각 학급별 교회출석상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 표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고등학교가 중학교보다 대체적으로 비율이 낮고 가장 높은 출석률이 중1인데 비해 가장 낮은 것은 고3이었다.

    아마 이 현상은 좀 더 성숙한 신앙을 위한 하나의 침잠기가 아닐까 여겼다.

     

    중1

    중2

    중3

    고1

    고2

    고3

    소계

    1-41%

    2-58%

    3-49%

    4-40%

    5-72%

    6-41%

    1-19%

    2-62%

    3-43%

    4-22%

    5-20%

    6-93%

    1-60%

    2-36%

    3-50%

    4-33%

    5-57%

    6-39%

    1-44%

    2-29%

    3-43%

    4-60%

    5-44%

     

    1-39%

    2-42%

    3-46%

    4-48%

     

     

    1-43%

    2-34%

    3-24%

    4-34%

     

     

    중(전체)-46%

    고(전체)-40%

     

     

     

    소계-50%

    소계-42%

    소계-46%

    소계-44%

    소계-43%

    소계-34%

     

     

    제4절 나눔의 삶을 위한 연습

     

    1. 국방기금 모금 바자회 개최

    전국 여자 중․고등학교에서 실시되었던 「국방기금 모금 바자회」가 본교에서도 1970년 10월 16일 신관 1층서 열렸다.

    여기에 출품된 작품은 그동안 수예시간에 정성들여 만든 수예품 일천여점과 창의력을 발휘해서 만든 재봉 작품 등이다.

    많은 학부모님들이 오셔서 새삼 딸들의 솜씨에 탄복하시고 흐뭇한 마음으로 사주셨다.

    1971년에도 수예품 바자회가 10월 20일과 21일 양일에 걸쳐 본관 1층에서 열렸다. 1년 동안 가사시간에 정성들여 만든 전교생들의 작품들을 모아 가졌던 바자회는 예년에 비해 규모가 좀 작은 편이었으나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께서 많은 작품을 사주셨고 예년과 마찬가지로 도우넛과 생강차는 인기가 대단했다.

    1970년에 이익금을 국방기금 모금운동에 사용하였으나 1971년에는 각각 본인에게 이익금을 돌려주었다.

     

    2. 꽃씨 모으기

    새마을 운동의 하나로 전 국민이 참가한 꽃씨 모으기 운동에 본교에서도  적극 참여하였다. 각 반의 봉사부장 책임 아래 1인당 5g씩 책임량을 정하여 거두었는데 전교생이 모두 협력해 주어서 꽤 많은 양의 모인 꽃씨를 중구청으로 보냈다.

     

    3. J․R․C의 사랑과 박애의 손길

    4. 자매부대 위문공연 (월미도 해군부대)

     

     

    5. 교단에 뜬 무지개

    1973년 5월 (?)일자 중앙일보에 ‘교단에 뜬 무지개’ 라는 제목으로 한 여선생님의 미담(美談)이 실렸다. 그 내용은 인성 제7회 졸업생 김정애 선생님이 행하신 이야기다.

     

    6. 장학금 조달을 위한 국화재배

    1974년 6월 15일 최상근 선생님의 지도로 원에반 학생들은 장학금 마련을 위해 국화 재배를 하기로 하고 큰 화분 500개와 작은 화분 500개를 들여왔다. 이를 고 3학년 1반 원예반원들이 동원되어 황사와 흙과 거름을 일정한 비율로 섞어 국화를 모종하는 중에 그 뜻을 이해한 전교생이 운동장에서부터 모래와 흙을 운반해 주는 협동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 내실을 다지는 새로운 준비 1972.03

    제1절 중․고교 교장직 분리

     

    1972년도는 본교가 개교 20주년을 맞는 해이다

    그동안 이동욱 교장이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장직을 겸하고 있던 것을 72년 신학기에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중학교 교장직을 따로 분리하여 박원호 고등학교 교감을 제 4대 중학교 교장으로 발령하고 중학교 교감이던 김덕용 선생님을 고등학교 교감으로 임명하는 인사개편이 있었다. 또 중학교 교감엔 조겸석 교사가 승진되었다.

    5월15일 개교기념일 및 스승의 날에는 십년 근속교사로 최상근, 박희순, 이상수 교사가 표창을 받았다.

     

    제2절 방송반 신설

     

    오래 전부터 희망해 오던 교내 방송반 시설이 1972년10월2일에 3층 양호실이었던 자리에 완비되었다. 방송실장엔 조동인 교사, 음악담당엔 유명희, 장계원교사, 보도 담당엔 박경애, 김복순 교사, 프로듀서엔 강순덕 교사, 기술엔 노승철 교사가 담당했다. 방송실 근무학생으로는 고등학생 6명, 중학생 6명과 방송반장을 뽑아 매일 중․고 2명이 맡아 방송실 운영을 도왔다. 방송반 운영 계획 중에는 주로 음악에 관한 내용이 많았는데 음악감상이나 명곡해설 작곡자 연대 및 음악의 여러가지 상식을 알려주고 또 음악퀴즈도 가지므로 학생들의 정서(情緖)교육에 큰 도움이 되었다.

     

    제3절 기독교 방송에 출연

     

    1972년 10월 16일 기독교 방송인 <명랑백일장 공개방송>이 본교 강당에서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진행되었다.

    고등학교 합창부가 <금발의 제니>를 부름으로 시작된 백일장은 사회자 곽규호 씨의 익살로 폭소를 터뜨리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제4절 백만인의 합창 공개방송에 출연

     

    1972년 12월 12일 오후 2시 30분부터 KBS의 「백만인의 합창공개방송」이 본교 강당에서 열렸다.

    고등학교 전교생이 참석한 이 방송은 보다 건전한 노래를 배우고 전파시켜 명랑 사회를 이루자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라나․에․로스포」와 우리 학교 선배인「윤희정」씨가 특별찬조로 나왔고 지도를 맡으신 분은 김도향 씨였다. 이 날에 김덕용 교장선생님께서 ‘산토끼’를 부름으로 더욱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고 최상근 선생님께서 윤희정 선배의 자랑도 해 주셨다. 우리 합창부의 「나이팅게일」과 더불어 우리들은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 「두 개의 작은 별」「목요일 밤」「소꼽동무, 새 색시」등의 노래를 힘차게 불렀다. 이 방송은 17 일 오전 9시 40분에 방송되었다.

     

    제5절 전라남도 학생들과의 자매결연을 맺다

     

    1972년 11월3일 제1회 전국 중․고교생 도(道) 대항 육상경기가 인천 공설운 동장에서 열렸는데 본교는 전라남도와 자매결연을 맺어 그들 경기에 본교생들 이 참가하여 열띤 응원으로 자매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제6절 장학제도의 확대

     

    본교는 우수한 학생을 길러 낼 목적으로 기왕에 존속되었던 장학금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 장학제도의 문을 크게 열어 놓았는데 새로 규정된 「장학금 지급 안」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매우 높았다.

     

     제7절 평준화에 의한 인성(仁聖)교육

     

    1. 입시제도의 개선

    1973년 2월 28일, 민관식 문교부장관은 고등학교 및 대학(校)의 입시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이어 동년 3월 13일 그 시행 계획을 발표하였다. 입시 제도의 개선 이유를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교육적 측면에서

    (1) 과중한 학습 부담으로 인하여 학생들의 신체 발달이 저해되고 잇다.

    (2) 합격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학생들은 정서적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

    (3)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으로 교육 과정이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 다.

    (4) 입시경쟁으로 인하여 학생들은 이기적이며 비 협동적인 성격이 형성되 고 있다.

    (5) 학교간의 격차는 더욱 조성되어 입시 경쟁을 부채질하고 있다.

    둘째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1) 과중한 교육외적(敎育外的) 교육비, 과외비 부담 등으로 가정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2)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풍조(不信風潮)가 조성되어 과외수업이 더 성행 되고 있다.

    (3) 출신학교 기준 간판위주의 인간 평가 풍조로 소위 일류병(一流病)이 더 만연되어 가고 있다.

    (4) 수험 준비 학관의 발호와 학관 출입으로 인하여 학생들의 불량화 경 향이 심각한 현상을 빚고 있다.

     

    제8절 교복이 바뀜

     

    학교 초창기부터 입어온 큰 깃의 교복이 1970학년도에 들어와 중학교는 둥근깃의 브라우스로 새롭게 바뀌었다.(당시 인천시 여자 중학생들 공통교복이었다.)

     

    제9절 10년 근속자 표창

     

    매해 연례적으로 치러지는 스승의 날 겸 개교기념일이나 1973년 개교 21돌 맞이 행사에서 10년 근속자 교사에겐 남다른 감회가 깊은 날이기도 했다. 표창을 받은 분은 임창숙, 엄대용, 문무영 교사이다.

    1974년 5월 15일 개교 22주년 기념식에서 이영환 교사가 10년 근속자 표창을 받으셨다.

     

    제10절 교련 실기 경연 대회에 참가

     

    남북 적십자 회담으로 남북의 관계가 많이 부드러워졌으나 내적인 강화를 위해 3년 전부터 전국남녀고등학교 교련실기대회가 실시되어왔다. 본교도 1971 년 11월23일 인천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고등학교 교련경연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했는데 1973년 5월 25일에도 예년과 같이 인천 시내 각 남녀 고등학교가 모두 참가하는 교련실기경연대회에 고1학생이 주동이 되어 참가하였다. 남학생들은 총검술, 질서훈련, 응급처치법의 종목을 실시하고 여학생들은 질서훈련, 응급처치법, 환자운반법 등에 걸쳐 실시하였다.

     

    제11절 시청각 교재를 위한 영사기․환등기 구입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시청각 교재 구입 계획에 따라 6월25일에 19mm영사기를 구입하였다. 이 교재는 본교 강당에 장치되어 있는 대형 영사 스크린과 콤비가 되어 시청각 교육에 큰 효과를 올렸고 이어 다음날인 26일에 들여온 최대형 10×10형 크기의 실물 환등기는 실물 어떤 것을 넣어도 영사막에 천연색 그대로 나타나 학생들의 시청각 교육용 교재에 많이 애용되었다.

     

    제12절 간행물 콘테스트에서 최고상 수상

     

    1973년 12월17일 인천시 교육청 주최 「간행물 콘테스트」에서 인성여중이 산문부 최고상을 받았고 문집면에서는 인성교지 제12집이 입선의 영광을 안았다.

     

    제13절 교사합창단

     

    중․고 교사 전원이 참석한 교사 합창단은 본교의 특색으로 추수 감사절이나 성탄절 예배 등에 준비한 찬양을 드림으로 교사와 학생이 일체가 되는 본(本) 이 되었다.

     

    제14절 이동욱 교장 교육학 박사학위 받고 귀교(歸校)하다

     

    3년 간의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교한 이동욱 교장을 맞는 환영예배가 6월14일 본교 강당에서 있었다. 경기도에서는 첫 번째로 박사 교장을 맞는 인성인들의 기쁨과 자긍심은 그대로 학생들에게 미쳐 저들의 바른 인격도야는 물론 향학(向學)의 불을 붙이는 계기도 되었다.

     

    제15절 평준화를 위한 학교 평가단 방문

     

    1973년도에 처음으로 서울과 부산에서 실시되었던 고등학교 평준화가 1974 년도에 인천, 대구 광주에서도 실시되었다. 이 평준화를 위한 「학교 평가단」 이 7월4일 본교를 방문하였다. 타교 교장님 한 분과 장학사 한 분이 방문한 이번 평가에서 참다운 기독교적인 정신으로 모든 것이 학생위주의 교육으로 진정으로 학생을 사랑하는 학교라고 하였다.

     

    제16절 엑스폴로 노래사절단과 사귐의 자리 마련

     

    1974년 8월13일부터18일까지 6일간 여의도 광장에서 열릴 예정인 엑스폴로 74 노래 사절단이 그 행사 전인 7월8일 오후에 제일 교회에 와서 간단한 헌신 예배를 드린 후 인성인들과 사귐의 시간을 가졌다.

     

     

    제17절 처음 입게 된 춘추복은 스웨터로

     

    1974년 9월 하순이 되자 아침, 저녁으로 제법 날씨가 쌀쌀해 졌다. 이에 따라 본교에서는 동복 상의와 치마로 대신하던 춘추복을 6월에 가졌던 간담회에서 대부분의 학생이 춘추복을 새로 만들기를 원하여 실용적이고 간편한 스웨터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제18절 ‘우리는 고교생’ 공개 녹음

     

    10월15일 본교 강당에서는 고등학교 전교생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방송공사 프로그램중의 하나인 ‘우리는 고교생’을 1시간 남짓 공개 녹음하였다. 녹화는 고3의 김명자 외 5명이 특별 출연하여 이규황 아나운서를 모시고 ‘교복’이란 주제로 여러 가지 장단점과 ‘낙엽’ ‘인성 여고’를 넣고 말 짓기, 속담 짓기로 모두 폭소를 터뜨리게 했다. 또 본교 선배인 가수 윤희정과 학생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기타소리에 맞추어 불러 더욱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이 체널(제일 방송국 710KHz)을 통해 '인성'의 이름이 전국에 퍼져나갔다.

     

    제19절 전국 남녀 중・고등학교 연극 경연대회에 출연

     

    동아일보와 서울신문사장배 쟁탈 전국남녀중․고등학교 연극경연대회가 1974년 10월16일부터 19일까지 서울 드라마센타에서 열렸다. 본교 연극반에서는 써머스 오브라이언」작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작품을 가지고 참가하였다. 이시형 교사와 김명숙 교사의 지도와 강영걸 연출자의 지도아래 연극 부원들 은 온 정력을 쏟아서 열심히 연습을 하였다.

     

  • 경기도 지정 국어과 연구 보고회를 가짐 1974.10.04

    제1절 본교가 경기도 국어과 연구학교로 지정 받아 1973년 3월부터 74년 9 월까지 연구한 보고회를 10월 4일에 성황리에 마쳤다. 주제는 ‘글짓기 능력을 기르기 위한 효율적인 지도방법에 대한 연구’로 박민숙 교사가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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