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짜 | 내 용 | 날 짜 | 내 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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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03.04 | 입학식 | 06.19 | J,R,C 기독병원방문 |
03.11 | 신입생환영예배 | 06.25 | 반공웅변대회 |
04.03 | 기독학생회 정부회장 및 각부장선출 | 07.27 | 종업식, 하기봉사대 환송식 |
04.15 | 부활절예배 | 07.30 | 하기봉사대출발 |
04.24 | 교내부흥회 | 08.05 | 수영강습회 |
04.26 | 회충약복용 | 09.02 | 모범 애향반 표창식 |
04.30 | 체능검사 | 09.12 | 기독학생회임원개선 |
05.01 | 고3 설악산 수학여행 | 10.05 | 소풍및백일장 |
05.14 | 콜레라예방접종 | 10.14 | 예방주사접종 |
05.15 | 개교 16주년 기념행사 | 11.26 | 추수감사절 합장콩쿨, 체육대회, 환경미화, 성경퀴즈 |
05.17 | 장티푸스 예방접종 | 12.20 | 성탄예배 |
05.18 | 인성작품전 | 12.21 | 종업식 |
05.20 | 전국체육대회 경기도제1차예선 | 1969.01.17 | 제6회 졸업식 |
1968년에 신설된 J・R・C는 Junior Red Cross의 약자로 청소년 적십자란 뜻이다. 인도, 공경, 중립, 독립, 봉사, 단일, 보편의 7대 원칙으로 박애와 봉사, 보건과 친선의 씨를 사회에 뿌려주는 역할을 하는 모임으로 이는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 위에 피어난 「앙리・뒤낭」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루어진 적십자 정신과 맥을 같이 했다.
이들 청소년 적십자 단원들은 우선 ‘나는 청소년 적십자의 단원으로서 몸과 마음을 건전히 하여 박애와 봉사와 친선의 정신으로 나의 이웃과 학교와 향토와 국가 및 세계 인류를 위하여 봉사할 것을 맹세합니다’ 란 선서식을 갖는다.
그렇게 하여 단원이 된 학생들은 5월 7일부터 3일간 교내에서 유문환 교사를 강사로 모시고 응급 처치법 강습을 받았다. 이 강습을 온전히 수강한 회원에게는 수료증이 주어졌고 매주 금요일마다 약 2시간씩 기독병원에 가서 온정 (溫情)을 나누는 봉사활동을 전개했다.
또 9월 28일 YMCA 제물포 와이즈 맨즈 클럽의 무의도 진료반을 보조하기 위하여 본교 고1의 J・R・C반원인 김혜경 안창애 서옥란 유인숙 김신숙 등이 인천 앞 바다 근해에 있는 무의도에 가서 많은 봉사를 하고 돌아왔다. 생활수준이 낮고 가난한 섬사람 대부분이 각종 병에 걸린 환자였는데 특히 피부병 환자와 영양실조가 많았고 어른들은 위장병으로 시달리는 사람이 많았으나 섬 안에 의사가 한 명도 없어 환자들의 병은 거의 방치 상태였다. 그 비참한 생활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좀더 구체적으로 의논한 진료반원들은 환자 치료 목적 외에도 난민 구호를 위해 많은 약과 밀가루 옥수수가루 등의 식량과 의류를 도민(島民)에게 나누어주고 왔다.
또 예년에 없었던 극심한 한발로 인한 영호남 지구의 재민(災民)을 위하여 인성 J・R・C회원인 고2 백숙자. 신은숙, 정혜련, 황옥례 등 4명이 10월 30일부 터 11월 2일까지 방과 후 주로 상점들을 상대로 하여 모금 운동에 나섰다.
여기에서 6천원이 모금되었는데 비록 많지 않은 돈이나마 한해민(旱害民)에 도움이 되기를 빌면서 11월 3일 J・R・C경기도 지사에 천원, 그리고 인천신문사에 5천 원을 각각 기탁하였다.
이처럼 이들 J・R・C의 선후배 단원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활발하게 활동범위를 넓혀 나가 첫째 봉사활동으로 환경미화작업과 스승의 날 봉사활동을 하였고 둘째 보건 안전활동으로 응급처치법(應急處置法) 강습과 위생포스터 및 표어 제작 보급, 체육대회개최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았고 셋째 국제 친선 활동으로 국제친선 앨범교환 등 자선 예술제 개최, J・R・C 리더쉽 강습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확대해 나갔다.
더욱이 헌혈 운동에도 70명이나 되는 단원들이 저마다 헌혈을 하겠다고 앞장서 적십자 병원을 찾아감으로 그곳의 의사와 간호원들이 무척 기특하게 여겼다. 저들은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祭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희브리서 13:16)란 말씀을 즐겨 실행한 참 기독학생들이었다.
1969년 스승의 날에는 J・R・C 고1 회원들이 어디서 준비했는지 구두닦기통과 도구들을 들고와 출근하시는 선생님들의 구두를 빼앗다시피 벗겨 가지고 제법 침을 발라 가면서 광이 나게 닦아 드렸다.
또 1969년 호남지방에 내린 폭우로 말미암아 엄청난 피해와 수재민이 생겼다. 이들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에 나선 고1 J・R・C단원들이 방과후에 두시간 씩 3일 간 동인천역 지하도 입구에서 모금함을 마련해 놓고 오가는 행인들의 자발적인 선행(善行)을 기다리기만 했던 바 그 성과 13,665원이라는 금액이 모여졌다. 결코 적지 않은 시민들의 관심에 감사하며 본교생들의 성의도 합하여 모은 돈을 경기일보사에 전달하였더니 동 신문에 본교 모금운동이 기사화 되었다.
1968년 4월 23일 숙명여자 대학교의 개교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하나 로 전국여고생을 상대로 하는 백일장에서 고1의 이희주 양이 우수상 2석이 란 영광을 차지하여 상장과 부상(파카만년필 및 김남조 시집)을 받았다. 시 상식에서 심사위원이신 서정주 시인이 하신 희주양의 평은 시(詩)란 것은 남 에게 얻어들은 풍월로서는 도저히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인데 자기의 독창적 인 세계를 자기 표현으로 잘 살려냈다고 평(評)해 주셨
1968년 5월 15일에 개교16주년 기념행사를 하면서 10년 근속 교사 표창이 있 었다. 학교신문 제4호 2면(68년5월30일 발행)에 실린 당시 편집부의 글을 살펴 보겠다.
‘학교가 열린 지 열 여섯 해. 초창기의 어린 학교를 오늘과 같은 대인성(大仁 聖)으로 이끌어 오신 분들 중에 특히 십 년이란 세월을 하루같이 인성과 함께 숨쉬고 함께 기도해 오신 세분 선생님이 계시다. 그야말로 코 흘리게 미취학 아동(6주년)을 코 닦아주며 손 붙들어서 이제 열 여섯의 성숙한 처녀로 만들어 놓으신 숨은 공로자들. 조겸석 선생님, 허경화 선생님, 김명숙 선생님(순서에 의미없음)께서 개교를 기념하는 뜻깊은 날에 학교로부터 표창장과 상품을 받았 으며 동창회, 학생회로부터 기념품을 선사 받았다.
- 김명숙 선생님과의 일분간 인터뷰-저쪽(어느 쪽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표현 하셨지만 현재 국민학교 위치인 듯) 언덕 하꼬방에서 240명 모아놓고 공부하던 때를 생각하니 감격의 눈물이 쏟아져서 기념식 도중에 단에서 내려와 버리고 말았어요. 흑흑.’
기독학생으로서의 긍지와 박애정신을 피와 땀으로 봉사하는 본교 하기봉사단은 지난 여름방학 중 일주일간 벽촌에 있는 개척교회에 나가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성과를 올렸다.
1968년 8월 5일부터 12일까지 두 팀으로 구성하여 한 팀은 강화도의 장동감리교회에,
다른 팀은 인천 석바위장로교회에 가서 메마른 생활에 지친 농민들의 신앙심을 높이는데 고무적인 역할을 했으며 비신자들을 위한 전도사업과 그들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 주는 농사일,
밤에는 하기 성경학교를 열어 시골 어린이들에게 예수님의 형상을 개념적으로나마 인식시켜 주는 일, 오락을 거의 모르는 그들에게 즐거운 게임 등으로 이제 일어서는 두 개척교회를 위하여 적극적인 봉사를 마치고 왔다.
= 석바위 교회단=
▲인솔교사 조동인, 조성훈
▲단 원 (고3) 정혜련 윤미숙 백숙자 김학남
(고2) 유병재 정영실
=장동교회단=
▲인솔교사 윤희미자, 박희순
▲단 원 (고3) 박순애 박은실
(고2) 박영숙 조병분
(고1) 이윤옥 이환옥
1968년에도 가을 들어 학교 행정에 자극을 주는 두 가지 행사가 있었다. 인천지구 협동 장학위원회에서 인천시내 중등학교 교감단에 일임하여 실시되는 보건 심사가 10월 4일 본교에서도 이루어졌다. 각 학교의 시설 확충과 국민보 건의 향상을 위한 학교 환경 및 보건위생 실태를 질적으로 높이기 위해서 실시되는 이번 심사에서 본교는 비록 거창한 시설은 없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분위기에서 지역사회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우수 학교로 지적되었다.
이어서 16일에는 교육 전반에 걸친 학생 생활지도, 학업지도, 학교운영 등에 관한 종합적인 진단을 하고 그 평가를 알아보려는 종합진단반이 장학 계장 인솔하에 본교에 내교 하였다. 이 제도는 미국 미쉬겐 대학 부속교에서 자체 진단을 위해 대학에서 평가위원들이 구성되어 실시하던 것이 시초인데 경기도에서는 이번이 7회 째로 이는 객관적 관찰에 의한 문제점을 찾고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공동목표를 모색하여 보다 건전하고도 알찬 교육을 해 나가기 위한 목적이었다.
1968년 10월 9일 오후 1시에 본교 기획위원 (유병제를 비롯한 8명)들은 최상근 선생님을 모시고 그 동안 기독학생회에서 자치적으로 폐품을 모은 것을 처리하여 생긴 수입금으로 시내 도립병원의 무료 환자들을 위문하기 위한 방문을 가졌다.
<인성여중고 기독학생회>라고 새긴 커다란 거울을 증정하고 준비해 간 과일과 빵을 간식으로 나누어드리며 찬송과 기도, 그리고 설교로써 병약해진 그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기를 기원하며 위로해 드리고 돌아 왔다.
폐품 수집 상황은 중 1의 8반이 가장 우수했으며 둘째 고 1의 4반이었다. 이들 2개 반에 학생회 봉사부에서 간단한 상품을 나누어주었다.
1968년도 1학기에 학생회의 자활활동으로 행해졌던 폐품 수집으로 1,054원이 있었는데 2학기에 들어와서도 학생회에서는 각 반의 봉사부장을 통해서 주로 신문지를 수집한 폐품을 팔아 7백원이 되었다. 여기에 학생회비 8백원을 보태어 도합 2,550원으로 큰 거울을 사서 10월 20일에 동인천 역 대합실에 걸어 놓았다.
이로써 거울이 없어 불편을 느끼던 승객들이 편의를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