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여고의 출범

  • 조회광경 1962.05
  • 농촌 계몽기 1962.08.06
  • 2차 고등학교 신관 기공식 1962.09.19

    1962년9월19일 부족 교실을 면하고자 2차 교사 신축을 목적으로 철근콩크리 트 5층 18교실 규모의 교사(校舍) 기공식을 가졌다.

    - 고등학교 신축교사(후에 초등학교 교실로 쓰다가 허물었다.)

     

    현대식 5층 건물 기공예배

  • 장봉도와 도일 지방 농촌 봉사활동 1962.10

    교사 허경화

     

    우리가 농촌에 계몽 및 봉사의 임무를 띠고 일하기 시작한 것은 금년이 삼 년째이다. 봉사생활과 아동들의 종교적 지도가 우리 학교의 뜻하는 바 사명이다. 이런 의미에서 금년에도 제 1 대는 부천군 장봉도에, 제 2 대는 시흥군 도일면에 각각 임무를 띠고 나가게 되었다.

     

    <첫째 날> 11시가 지나서 우리를 실은 여객선은 인천을 뒤로하고 떠났다. 몇 시간 뒤, 장봉도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그 곳 교회 장로님의 영접을 받으며 여장을 풀었다.

     

    <둘째 날> 아침 일찍 어린 친구들이, 우리가 예배당 안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것을 보려고 모여온다. 농촌인지라 아침밥이 매우 빠른 것 같다. 예배가 시작되었고, 예상외로 학생수가 적었다. 오후에는 잡초가 우거진 밭에 나가 김을 매었다.

     

    <셋째 날> 새벽부터 바람이 몹시 불었다. 교회 썩은 짚으로 된 지붕이 일부 날아갔다. 전 도민의 대부분이 돌아오지 않은 어선들 때문에 매우 걱정들이다. 오전 예배와 성경공부가 끝난 후 우리는 하루종일 방안에 갇혀 있었다. 교회는 언덕 꼭대기에 서 있는 탓으로 바람의 공격을 더 받나보다. 저녁에 교회 장로님을 통해서 안 일이지만 이 섬에 13척의 배가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라 하였다.

     

    <넷째 날> 전날 바다에 나갔던 부자가 모두 귀항하지 못한 채 소식이 없다한다. 삼 모녀만 남아서 돌아오지 않는 아빠와 오빠를 찾으면 우는 통곡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오후에는 교회 앞마당을 넓히는 공사와 기왓장을 옮기는 일이 시작되었다. 모두들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는 것을 보고 무척 기뻤다. 이날 저녁은 모두들 피곤에 지쳐 잘 잤다.

     

    <다섯째 날> 오전 예배와 시상식을 끝내고 오후에는 다시 귀로에 올랐다. 입을 가지런히 하여 합창하던 어린이들의 귀여운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다음 해부터는 좀 더 보람있는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학생들의 참가를 통하여 웍․캠프를 실천해 볼 생각도 있다. 일년을 통하여 학생 자치회가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하기 방학을 통한 농촌 봉사활동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인성인이 모두 동참하여 이 나라 농촌을 명랑하고 여유로운 마을로 이루어 보자!

  • 제2대 시흥군 도일면 도일 교회 방문기 1962.10.06

    <10월 6일 > 12시 경 원곡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니 벌써 도일 교회 교인들이 지게와 인력거를 끌고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점심은 교회 아주머니들의 수고로 된 국수로 대접받고 예배를 본 후 우선 교회 안의 환경정리를 하고 계획을 세웠다. 예배는 그 날 저녁 8시부터 시작했는데, 종도 치기 전부터 아이들이 모여들어 예배가 시작할 무렵에는 백 명이 가까이 모여들었다. 마치 상록수에 나오는 어린이들을 연상시켰다. 환등기를 보여주려 했는데 전기 장치가 되지 않아 다음으로 미뤘는데 이것이 이들의 호기심을 꺾어 버린 것 같아 미안하다.

     

    <10월 7일> 10시쯤이 되니 아이들이 모여들었고, 다 모일 때까지 노래를 불렀다. 시작 할 무렵에 150명쯤 모였다. 아이들을 전부 반으로 가르고, 성경학교가 시작되었다. 부원 16명 중 1명 외에 전부 한 반씩 맡았다. 모두가 애송이 반사들이었으니까 엄벙대다 시간은 끝나고 말았다. 저녁 예배가 거의 끝날 무렵 몇 명만 남고 시장으로 노방 전도를 나갔다. 설교는 홍성현 선생님과 정용욱 장로님이 하셨다.

     

    <10월 8일> 오팔호라는 태풍으로 비바람이 휩쓸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많이 왔고 노래와 무용을 가르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평소에 많이 연습할 것을 후회했다. 오후에는 우리 부원들과 교회 반사들과 함께 레크레이션을 가졌다. 오늘 노방 전도는 ‘샛불’이라는 마을이었는데, 사람들은 모두 착해 보였고 말이나마 나와 주겠다고 해 감사했다. 8시부터 시작이 되었는데 설교는 교장 선생님과 최상근 선생님이 하셨다. 촘촘히 앉은 아이들 앞에서 설교를 했고, 뒤에서는 우리 성가대가 서 있고, 이 주위에는 석유 횃불을 들고 서 있었다. 설교하는 도중 휘파람 소리, 조롱조의 커다란 웃음소리, 말소리도 들렸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어제보다 성과가 적은 것만 같이 느껴졌다.

     

    <10월 10일> 오후에는 저녁에 있을 발표회 준비에 교회 안이 혼잡했다. 발표회에 나갈 애들을 다시 불러모은 것이었다. 이것이 대강 끝난 후 기념 촬영을 하였다. 그리고 나와 몇 명은 면사무소를 찾아가 면장님에게 잠깐 동안 이 고장의 실정에 대해 물었다. 토지분포, 교육정도, 인구 이런 것들에 대해 면장님이 참 친절히 대해 주셨다. 오늘은 뱅공이라는 곳으로 노방전도를 갔다. 다른 때도 그랬지만 두 패로 나누었는데, 조은성 선생님과 학생 5명이 교회에 남아 발표회를 진행시키고 나머지 11명과 박희순, 홍성현 선생님은 노방 전도를 떠났다. 오늘 일들에는 모두 염려가 많았는데, 제일 많이 모였다. 선생님 두 분과 집사님 한 분이 설교를 하셨는데, 설교도 모두 잘 하셨고 이에 대한 반응 또한 많았다.

     

    <10월 10일> 예배가 끝난 후 시상식이 있었는데, 빠진 애가 없도록 다 주었다. 1시경에 떠난다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 교회를 떠났다. 교인들과 몇 명의 주일 학생들이 역까지 따라 나왔다. 정들었는데, 이별이란 전송을 받으며 기차는 떠났고 눈물이 핑 돌았다.

  • 만추의 서정 196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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