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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53 INSUNG GIRLS’ HIGH SCHOOL INSUNG GIRLS’ HIGH SCHOOL Vol. 53
인성여고 백일장대회 우수작
단편
거친 손의 어머니
1학년 김도희
어렸을 때, 나는 시장을 싫어했더랬다. 거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따라갔던 시장은 시끄러 줘 따끔거려도 어머니는 언제나 나에게 사랑을 주셨으니까.
운 고함 소리와 꾹꾹한 냄새로 가득한 그런 곳이더랬다. 어머니의 산소에 다녀간 뒤 나는 무언가 나를 부르 이젠 더 이상 답답하지 않다. 편한데 슬프다.
는 듯한 목소리에 이끌려 옛날집 옆에 있는 시장에 갔다. 여전히 꾹꾹한 시장냄새, 아니 어머니 냄새. 시끄 “엄마 왔어! 집 잘 지키고 있었어?” “엄마, 엄마! 신발은? 나이키는?”
러운 고함 소리는 전과 달리 정겨운 소리이다. 어머니가 이상하리만큼 보고 싶은 날이다. “자,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나이키야 신어봐 꼭 맞을 거야”
“아, 진짜 가기 싫어!” “이게 뭐야? 이게 무슨 나이키야!”신발에 나이키 그림이 있다. 거꾸로. 분명 시장에서 샀겠지! 짝퉁
거친 엄마 손은 내 손목을 따갑게 한다. 촌스러운 할머니들이 쭈그려 앉아 파는 물건같은거 먹고 싶 을 사오면 어떡해.
지 않아. 심지어 촌스럽잖아.
“엄마가 우리 똥강아지가 제일 좋아하는 쥐포사줄게. 얼른 장보고 가자꾸나.” “짝퉁이잖아! 이게 뭐야!”
“쥐포는 슈퍼에도 팔잖아!” “짝퉁이야? 괜찮아 모를 거야 엄마가 사줬는데 예쁘게 신어야지?”
“그럼 엄마가 여름 신발 사줄까?” “싫어! 엄마 나빠!”방문을 잠갔다. 문 건너에서 엄마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듣기 싫다. 엄마의 슬픔이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신발은 싫다. 학교 애들은 나이키, 조던 이런 거 신던데 난 언제나 시장옷, 시 다 나한테 옮는 느낌이야. 곧 내 방쪽으로 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조용하게 오는데 무겁고 시끄럽다.
장 신발이다. 학교가기가 창피하다. 나를 책망하는 소리 같다. 분명 발걸음 소린데.
“그럼 딱 30분만 참자, 엄마가 까까하고 아이스크림 사줄게.” “그래도 이거 신어 너 여름신발 없잖아, 엄마가 나이키 꼭 사줄게.”
“딱 30분이야? 시간 되면 바로 나가는 거야. 약속. 얼른얼른.” 말하지 않을 거다. 엄만 나쁜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나빠. 신발을 방문 앞에 내려놨나보다. 갑자
약속. 새끼손가락을 건 엄마 손은 여전히 거칠다. 보들보들한 내 손과는 맞지 않아. 바셀린 바르면 금 기 마음이 무겁다. 엄마가 내 마음에도 신발을 놓았나보다.
방 나을텐데 왜 가만히 두는거야? 이해 할 수 없어.
“우리 강아지 이 옷 어때?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이거 살까?” 어린 시절 나는 정말 철없었었지 슬픈 생각에 잠긴다.
하늘색 반팔인데 중간에 크게 강아지가 공을 차고 있다. 나이키도, 노스페이스도 아니고 강아지 말이 “아, 까먹을 뻔 했네”
다. 학교에 입고가면 분명 놀림받을거야. 대답도 하기 싫어 말없이 뒤돌아 걸어갔다. 분명 엄마는 시무룩 손에 들려있던 작은 봉지를 보았다. 작고 촌스러운 신발이 들어있는데 정말 무겁다. 어른시절 내 방
한 표정이겠지. 심장에 바늘이 꼭꼭 찔린다. 체한 듯이 답답한 마음에 손을 따주는가보다. 그렇지만 저 옷 문 앞에 놓였던 그 때보다 훨씬 무겁다. 나는 어머니 산소에 다시 돌아갔다. 소복히 쌓인 눈이 따뜻해 보인
은 정말 입고 싶지 않다. 다. 살짝 만져보았다. 눈이 사르르 녹으며 내 거친 손을 적신다. 따뜻하다. 젖은 손이 부드럽다. 아니 눈에
“마음에 안 들었어? 예뻤는데…….” 젖은 손은 어렸을 적 나를 시장으로 끌고 가시던 어머니의 손보다 거칠다.
“나도 나이키 갖고 싶어! 그딴거 말구!” 눈물은 이상하게도 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립지 않은 것이 아니다. 지난날이 후회되지 않는 것도 아
분명 엄마에게 상처였겠지? 저 얼굴은 분명 상처받은 얼굴이야. 체한 나의 마음은 아직도 답답하고 니다. 찬 땅 속에서 어머니가 내대신 흘려 주시는 것이다. 젖은 손가락이 다 말랐을때쯤 나는 봉투에서 신
바늘로 콕 찍은 부분이 따끔따끔 쓰리다. 발을 꺼냈다. 나이키가 거꾸로 신발 몸체에 그려져 있다. 색도 촌스럽고 부분은 색이 바라기까지 했다. 손
에 다 들어올 만큼 작은 운동화를 어머니의 옆에 놓았다. 새하얀 눈밭 위에 빠알간 운동화가 살포시 올려져
어린 시절 철없던 나는 언제나 엄마에게 상처를 주었더랬지. 사춘기 시절 나는 언제나 체한 듯이 답 있다. 무겁게 내려놔지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저 하얀 눈에 폭 안겨 있는 모양새가 다정하고 포근해 보
답했었지. 몸이 체하면 손을 땄을 때. 인다. 마치 어린 시절 어머니 품에 안긴 나처럼. 그때는 그저 싫었던 짝퉁 운동화도, 촌스러운 하늘색 티셔
시원한데 왜 마음은 따꼼따꼼 아려오게 찔러도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는지 궁금 츠도, 어머니의 거친 손도, 시끄러운 시장도 어머니 내음이 풍긴다. 평생 맡고 싶었던 어머니 냄새. 산해
했더랬지. 진미도 나를 이처럼 행복하게 할 없을 거다거다. 향기로운 내음을 맡으며 어머니에게서 돌아 산을 내려왔
왜 그땐 몰랐을까? 분명 나는 어렸다. 그 다. 사륵 하며 나뭇잎 위에 눈이 떨어져 신발에 떨어진다. 나는 빙긋 웃었다.
래서 그런것일거다. 하지만 지금은 알 수 있다.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훌륭하신 분이셨어요.”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동안 어머니의 사 눈물이 떨어졌다. 이건 분명 어머니께서 내대신 흘리시던 눈물을 멈춰서 그런 것이겠지.
랑을 배불리 먹어서 일 것이다. 엄마한테 상처를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나는 다시 빙그레 웃고는 산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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